역내청

[하야하치] 애급옥오 (합작)

무인중 2017. 7. 29. 01:10








현관문 너머로 들려오는 무거운 발걸음, 약간은 가벼운듯한 공기의 흐름. 히키가야는 하야마의 발걸음일 거라고 직감했다. 히키가야의 예상이 맞는 듯, 이내 삐빅하더니 현관문 잠금장치가 울렸다. 몇 번의 시도 끝에 현관문이 살짝 열렸고 소파에 앉아 현관문을 빤히 보던 히키가야를 보지 못했는지 하야마는 침실로 터벅터벅 걸어가 옆에 쓰러졌다. 히키가야는 그런 하야마를 그저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하야마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라도 하듯 와이셔츠 가슴팍에 새빨간 무늬를 새겨왔다. 히키가야는 그런 하야마를 아무 말 없이 그저, 빠안히 바라볼 뿐이었다. 히키가야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이 그냥 [공허함] 뿐. 자신의 연인이 현관문으로 들어온 것을 보던 히키가야는 슬금슬금 소파에서 일어나 하야마의 잘 준비를 돕기 위해 침실로 들어갔다.

 

"... 하아, 젠장.“

 

술에 절어 몸을 가누지 못하고 제 침대 옆에 엎어져 잠에 든 하야마의 옷가지들을 주섬주섬 벗겨내던 히키가야가 미간에 주름을 그리며 탄식했다. 양말들을 세탁 바구니에 대충 던지고 나머지들을 바닥에 던지더니 그것들 중 하나를 집어 욕실로 들고 갔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빨기 위해 세면대에 물을 받은 후 세제를 풀고 주인을 닮은 새하얀 와이셔츠를 푹 담구었다. 세제에 담궈져 거품 묻은 셔츠를 한참을 비비고 비비더니 끝내 만족스럽지 못한 표정으로 찬물에 헹군 뒤 대충 걸어놓고 욕실을 나왔다.

 

그날 밤 욕실에서 잔잔히 들리는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반주 삼아 거실에선 몇 시간 동안 누군가의 울음소리가 나더니 이내 숨소리만이 정적을 채워나갔다. 똑똑-. 여전히 화장실에선 셔츠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하얀색과 대조되는 붉은 색 립스틱 자국을 머금고 있었던 셔츠에서 떨어지는 무색의 물방울.

 

***

 

밤 중 어느 새 침대로 올라가 자고 있던 하야마가 숙취에 두통이 오는 듯 머리를 부여잡으며 일어났다. 한 번 쭉 기지개를 펴더니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고는 낮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자신의 몸에 걸쳐져 있는 평범한 하얀 반팔 티셔츠와 트레이닝 바지와 거실에 걸려 있는 어젯밤 자신의 행동을 보여주듯 살짝 구겨져 있지만 눈처럼 깨끗한 와이셔츠. 그럼에도 하야마가 한숨을 쉰 이유는 무엇일까, 어젯밤 자신의 옷을 갈아 입혀준 히키가야에게 미안함이 있었는지 아침 식사를 자신이 준비하기 위해 부엌에 터벅터벅 걸어가 앞치마를 입었다. 하야마는 싱크대에 가 쌀을 씻어 밥을 앉히고 간단하게 계란후라이와 된장국을 끓이기 위해 재료들을 냉장고에서 꺼내와 썰기 시작했다. 히키가야가 깨지 않도록 조용히 탁, 탁 재료를 써는 하야마의 모습은 우스웠지만 그런 하야마의 노력을 깨버리듯 히키가야가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눈이 퉁퉁 부은 채 기상했다.

 

"아, 히키가야 일어났어? 조금 더 자고 있어도 괜찮아. 방금 시작했으니까.“

 

"됐다. 수저 꺼내놓는다.“

 

"... 응, 그래 그럼.“

 

***

 

"저기 히키가야, 나 어제 몇 시에 들어왔어?“

 

"1시 좀 넘어서.“

 

"... 그 때까지 깨어있었구나, 미안.“

 

하야마가 퉁명스러운 히키가야의 반응을 보고 살짝 웃음을 지었다. 머쓱하다는 듯 약간 어색한, 진심 없는 웃음. 저기 히키가야, 있잖아. 하고 말을 이어나가려고 했을 때 히키가야는 하야마의 이야기를 듣기 싫은지 음식을 거의 다 먹지 않은 채 "잘 먹었다" 라며 식기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내 하야마도 "아니다..." 라고 중얼거리더니 마저 먹기 시작했다.

 

그날 아침 식사에는 여러 감정의 표식이 섞여 있었다. 하야마의 가식적인 쓴웃음, 탁탁- 젓가락 부딪히는 소리, 히키가야의 흔들리는 눈동자, 그걸 본 하야마의 애매한 미소까지. 하야마가 이른 새벽부터 준비한 식사는 완벽했지만 오히려 쓴맛이 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아무 맛도 나지 않는 식사였다.

 

부엌 바로 옆, 거실 빨래 건조대에는 어떤 자욱도 없이 새하얀 와이셔츠가 살짝 젖은 채로 걸려있었다.

 

***

 

1

 

하야마의 목에 걸려있어야 할 것이 보이지 않았다. 사귄 지 백 일 째에 내가 선물한 마젠타색 넥타이. 선물이라며 살짝 달아오른 얼굴로 하야마의 앞에 내놓았을 때 그는 순수하게 기쁜 얼굴로 "고마워, 히키가야." 라며 달콤한 목소리로 내게 답하며 받았다. 선물을 준 그 날을 기점으로 거의 항상 메고 다녔던 것 같은데, 언젠가부터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한 일주일 전부터였던 것 같다.

 

"요즘 내가 준 넥타이 안 메고 다니네?“

 

"아, 그러게. 그냥 어쩌다보니-.“

 

"꽤나 좋아했었던 것 같은데. 그 넥타이.“

 

"음, 글쎄. 나 사실대로 말하자면 마젠타색 싫어해.“

 

충격이었다. 그럼 어떤 색을 좋아하는 거지? 하야마는 내가 선물한 그 넥타이를 받을 때 ‘평소’와 같은 말간 웃음으로 나를 맞이했다. 당시 하야마가 좋아하는 색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던 나는 평소의 감으로 마젠타 색상을 선택했다. 하야마가 마젠타색을 싫어한다면, 나에게 보인 그 맑은 웃음은 [거짓 웃음]이었던 걸까. 나는 하야마의 말에 뒤통수를 세게 맞은 듯 얼얼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차가운 목소리로 내 가슴에 비수를 꽂더니 자연스럽게 매고 있던 넥타이를 살짝 조였다. 그 넥타이는 '그 넥타이'와 전혀 반대색인 하야마의 눈동자처럼 푸른색의 넥타이였다. 하야마가 흘깃 나를 보더니 아까 식사할 때의 조심스러운 목소리와 전혀 반대인 날카로운 목소리로 비아냥댔다.

 

"아아, 그러게 내 취향 고려해서 사지 그랬어. 이렇게 오래 사귀었는데도 설마 내가 좋아하는 색깔도 모르는 건 아니겠지?“

 

"... 뭐?“

 

하야마의 목소리는 시리도록 차갑고 어지러울 정도로 배배 꼬여있었다. '평소의 따뜻하고 다정한 목소리가 아니야.', '하야마는 날 사랑하지 않는 건가? 아니,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어.' 따위의 잡담들이 내 머릿속을 스치고 있을 때 하야마는 내 대답이 듣고 싶지 않은지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허공에 "다녀올게" 라고 말하더니 현관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집 안은 시계의 초침 소리만이 울려 퍼졌고 하야마가 나가버린 현관문을 멍하니 쳐다보며 앞에 서있던 날 유일하게 쳐다보고 있던 것은, 그 날 내가 사준 [마젠타] 색 넥타이가 나를 책망하며 보고 있을 뿐이었다. 억울하게도, 난 여전히-

 

하야마가 좋아하는 색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

 

2

 

"하아-.“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하며 새벽의 찬 공기를 크게 들이마셨다. 나도 모르게 집에서 나올 때 히키가야의 얼굴은 보지 않은 채 그 집에만 인사하고 나와버렸다. 무서워서, 히키가야가 어떤 눈으로 날 보고 있었는지 알게 되는 것이 너무 두려워서.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자신도 모르게 히키가야를 상처 주는 행동을 하면서도 죄책감 느끼는 듯한 행동을 해버린다. 물론 히키가야는 눈치 채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난 지금 확실히 히키가야를 피하는 중이다. 그 이유라고 하면 역시 그거겠지.

 

나의 어렸던 18세의 홀로 짝사랑이자 첫사랑이었던 히키가야를 사회생활 중 우연히 마주치게 되어 예전에 친구였다는 터무니 없는 핑계로 겨우겨우 메일 주소를 얻었다. 그 후로 내가 먼저 연락해 만나는 횟수가 늘었고 자연스러운 만남으로 발전해왔다고 난 그렇게 생각한다. 연애 초반에는 내가 히키가야를 이끌며 추억을 쌓았고 중반에는 그도 익숙해져 서로를 배려하며 만남을 계속해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히키가야가 나에게 예민하고 까칠하게 대하는 일이 종종 생겼고, 나의 사회생활을 보며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때마다 나에 대한 히키가야의 불신에 나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나 히키가야와의 갈등이 생기기 일쑤였다. 그런 갈등이 계속 일어날 때마다 히키가야는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동자로 나에게 말했다. 내가 그의 눈빛을 해석하자면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것은, '날 버리지마.' 였던 것 같다. 아마도.

 

히키가야는 평소에 애정표현을 하지 않는 편에 속했지만 날 사랑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내가 이렇게 자신할 수 있는 이유는 최근 히키가야의 나에 대한 넘쳐나는 사랑이 부담스러워지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쉽지만은 않은 "사랑해" 같은 한 마디에도 끙끙대면서 살기 어린 눈으로 "어디, 가?" 라니. 너무나도 울렁거리는 상황에 혼자 식은 땀을 흘리기도 했다. 물론 난 그 때마다 억지로 웃음을 지어보며 “아무데도 안 가.” 하며 그 상황을 넘어가곤 했다. 그 히키가야는 직접적인 애정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언제나 날 사랑했다. 그것이 히키가야 혼자의 마음을 나에게 던질 뿐이었어도. 알기 때문에, 더 부담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상처, 받았으려나.“

 

다시 한 번 찬 바람을 깊게 들이쉬며 집에 혼자 있을 히키가야의 얼굴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뚱한 히키가야의 표정을 상상하니 귀여워서 살풋 웃음이 났다. 언젠가 다시 그 표정을 볼 수 있는 날이 올까, 하며 먼 곳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숙였다.

 

"히키가야의 앞에 가면 안 되는 거겠지.“

 

허공에 아슬아슬한 리듬의 문장을 내뱉었다. 나는 비겁하게도 여전히 히키가야를 사랑했고 그래서 직접적으로 히키가야에게 이별을 고할 수 없어 히키가야에게 실망감을 안기고 그가 나를 먼저 떠나게 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최근 야근, 회식이라며 늦게 집에 돌아갔고 종종 술에 취해 가기도 했다. 게다가 어제는 일부러 술집 여자에게 부탁해서 립스틱 자국을 묻혀오다니, 난 참 나쁜 연인이다. 이 일에 관해서는 왜인지 히키가야가 말을 꺼내지 않았다. 분명 어제 내 와이셔츠를 보았을 텐데 말이다. 히키가야는 보았지만 모른 체 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 내가 하고 있는 행동들의 의도를 알아챈 거겠지, 원래 히키가야 자신이 쓰던 방법이니 말이다. 아까 히키가야의 충격 받은 듯 멍한 표정이 뇌리를 스친다.

 

“상처, 받았으려나-”

 

또 다시 당연한 말을 중얼거렸고 다시 고개를 들어 아침 해가 머리끝을 내민 허공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히키가야 나는,

 

"하지만,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거야.“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히키가야 자기 자신을 깎아내려서라도 나에게 사랑을 줄 너란 것을 난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방법밖에 택할 수 없는 거야.

 

"넌 왜 항상 그런 방법만 쓰는 거지?“

 

과거의 내가 히키가야에게 했던 말과는 너무 모순적이라 괜시리 쓴웃음이 나왔다. 히키가야를 좋아하고 사랑하지만 그의 뜨거운 사랑에 히키가야의 나에 대한 마음은 부정하고 증오하게 된다. 쇳덩어리가 너무 뜨겁게 달궈져 오히려 빠르게 식어버릴 듯한, 그런.

 

[애다증생]이라고 하면 맞는 표현, 이려나.

 

***

 

1

 

결코 따뜻하지 않았던 어느 가을, 난 포근한 기분을 느꼈다. 가을 칼바람으로 정신없이 휘날리는 감정들과 나, 그리고 하야마. 붉은 얼굴을 내민 단풍나무 밑에 우리는 마주 서있었다. 서로의 얼굴은 보지 않고 손을 꼭 잡은 채로, 아무도 단풍잎과 우리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나와 하야마 둘 사이에는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지만 그 안의 몽글몽글한 느낌을 찾을 수 있었다. 바즈락하며 나뭇잎이 바삭하게 부딪히는 소리를 방해하는 까마귀조차도 사랑스러워 보이던 어느 가을이었다.

 

그 후에도 우리는 여러 번의 가을을 같이 보냈다. 그 단풍나무 밑에서, 단풍잎들 사이에서, 두 손을 꼭 쥔 채로 말이다. 매년 우리의 잎사귀는 모양을 바꾸어갔다. 볼 붉힌 단풍잎, 샛노란 은행잎, 운치 있는 마른 잎. 그리고 올해는 심하게 말라 비틀어져 아주 바삭한 소리를 내는 찢어진 잎사귀였다. 서로 마주 잡은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는 그대로였지만 왜인지 점점 차가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높고 푸른 하늘 아래 겨울을 준비하는 듯 잎사귀를 떨어뜨리고 있는 앙상한 나무, 그 아래 나와 하야마가 있다. 우리 머리 위에는 언제나와 같은 까마귀가 날아다니고 있다. 말라 비틀어져 찢어진 나뭇잎과 진한 노란색으로 변한 은행잎이 부딪히는 듣기 좋은 바작한 소리, 그것을 감상하는 걸 방해하는 까마귀, 하지만 나의 눈에는 여전히 사랑스럽다.

 

하야마가 요즘 나를 피하고 있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것도 하야마 본인이 제일 싫어하던 방법으로 말이다. 자신을 나쁜 사람으로 돌리고 상대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내가 자주 사용하던 방법이었다. 내가 쓸 때는 몰랐는데 이 방법이 상대에게 꽤나 리스크가 크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야마가 차가운 말로 나를 상처 입히며 자신이 나쁜 사람 포지션이 될 때마다 나 역시 지치고 가슴이 시려왔다. 재수없는 녀석, 내 포지션을 맘대로 뺏어가고 자기 혼자 멋있는 척을 하려고 하다니. 정말이지 리얼충 중의 리얼충이다. 그렇지만 화를 낼 수 없었다. 내가 자주 애용하던 방법이니만큼 하야마가 받고 있을 꽤나 지독한 고통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 혼자 망상하고 멋대로 자만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지금 내가 보고 있는 하야마는 나를 사랑하고 그렇기 때문에 내 애정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내 애정 방식에 대해서도 눈치 챈 거겠지.

 

“그래도, 하야마는,”

 

보낼 수 없어.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나에게 하야마는 그런 사람이었다. 어두컴컴했던 다락방에 조용히 불을 밝혀주던 한 등불 같은 사람. 등불이 다락방을 떠나면 그 다락방은 다시 아무도 찾지 않던 어둠의 공간이 되어버린다. 등불이 없어 사람이 찾지 않는 것일 수도 있지만 다락방이 그 등불을 생각하며 다른 불빛이 들어올 수 없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 것이다. 하야마가 나를 떠나버린다면, 분명 영원히 혼자 아파할 것이 뻔하다. 이기적이지만, 나를 위해서라도 하야마를 놓을 수가 없다. 하야마는 나에게 있어서 애급옥오였다. 사랑해서, 너무나도 사랑해서 금빛 꽃잎 옆에 그늘을 지우는 까마귀조차 사랑스러워 보이게 하는 사람. 나는 가끔 생각한다. 하야마는 나를 사랑하고 나도 하야마를 사랑하는데 줄곧, 영원히, 옆에 붙어있으면 안 되는 걸까? 역시 이기적인 나였다.

 

***

 

“있지, 하야마. 넌 나를 사랑해?”

 

“응.”

 

“그렇다면 왜 나를 피하는 거야?”

 

“이제, 이런 게 힘들어서. 너도 그렇지 않아?”

 

“그렇지만, 좋아하면 되는 거 아니야?”

 

'틀린 것은 아니지만, 너도 생각하잖아? 애급옥오와 애다증생은 공존할 수 없어. 이제 난 너무 지쳤어. 역시 난 히키가야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좋은 사람이지 않은 것 같아. 아픈 거 그만하자, 너도 힘들잖아.‘

 

아무 말 없이 나에게 씁쓸한 웃음을 머금은 얼굴을 비치던 하야마의 눈에 담겨있었다. 역시, 우리는 무리인 걸까. 난 아파도 널 놓치고 싶지 않은데, 넌 아닌 걸까. 하야마는 내 얼굴을 수십 초 간 보더니 살짝 입을 열어 옅은 숨을 뱉었다. 차가운 바람이 나뭇잎을 간질였다. 주위에는 여전히 하야마, 나, 그리고 까마귀 뿐이었다. 아무 말 소리도 들리지 않던 어느 가을날이었다.

 

***

 

애급옥오(愛及屋烏): 「사랑이 지붕 위의 까마귀에까지 미친다」는 뜻으로,  사람을 사랑하면 그 집 지붕 위에 앉은 까마귀까지도 사랑스럽다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