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내청

[하야하치?] 의식의 흐름

무인중 2017. 1. 17. 00:05
[총을 들고 쏘세요! 한 명이 죽으면 이 방을 나갈 수 있답니다!]



하얀 방 안의 하얀 테이블 위에 하얀 쪽지가 있었다. 장난스러운 문체의 쪽지는 나나 하야마나 정말 짜증나게 만들었다.(사실 하야마는 짜증내지 않았다.) 그렇다고 장난이라고 넘어가기엔 사람이 미치기 좋을 정도의 새하얀 방에 무슨 영문인지 하야마와 내가 갇혔달까, 뭐 그런 상황이다.

행여나 무슨 일이 생길까 우리는 테이블에서 조금씩 떨어졌고 총을 계속 바라보고만 있었다. 긴장감에 아무말도 하지 않은 지 얼마나 지났을까, 조금씩 경직되었던 몸이 풀리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무념무상하기로 했다. 하야마는 그런 내 생각과는 조금 다른지 앉은 나를 잠시 보더니 다시 테이블로 다가가 쪽지를 주워들었다. 한참을 쪽지에 몰두하던 하야마가 잠시 뒤에 "악"하고 소리를 내뱉더니 놀란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뭐, 뭐냐."

"이것 좀 봐, 히키가야."



하야마는 당황한 표정의 내 얼굴 앞에 아까의 쪽지를 들이밀었다. 아까와 똑같은 짜증나는 내용의 글씨 뿐이었다. 순간적으로 뇌리를 스친 한 마디, '신종 괴롭힘인건가?'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어이 없는 표정으로 자신을 올려다 보던 나를 보던 하야마가 어색하게 웃으며 쪽지의 한 구석을 가리켰고 시선을 그의 손끝으로 옮기며 감탄사를 참을 수가 없었다.



"아니, 이게 뭐야?"

"보는 그대로야. 어떡할래...?"



[둘 다 살아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서로 좋아하는 진심을 고백하는 것뿐이야~?]



하야마는 약간 상기된 얼굴로 흘리듯이 내 의사를 물어보았다. 그는 물어본 후에도 귀끝까지 빨개져 내 눈을 마주치지 못했는데 숨겨왔던 하야마의 진심을 알아버린 것 같아 조금 많이 당혹스러웠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하는 거였더라, 하야마의 말에 대답하는 걸 머뭇거렸다. 하야마가 고민하는 내 얼굴을 보더니 특유의 쓴웃음을 지으며 슬픈 목소리로 쥐어짜내듯이 내게 말했다.



"역시, 싫구나...? 어쩔 수 없지."

"... 미안하다."

"그럼 내가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는데, 들어주지 않을래?"

"말해봐라."

"히키가야, 사실 내가 널."



뒷말을 들을 수가 없었다. 듣고 싶지 않았다.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상처 받는 건 용서할 수 없었다, 특히 제일 재수없는 하야마만은. 나는 하야마의 뒷말이 흘러나오려는 것을 무시하고 테이블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깃털처럼 흰 테이블과 대조되는 검정색 총을 오른손에 쥐고 총구녕을 내 귀 옆으로 가져다댔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하야마는 불안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하야마의 그런 아픈 시선을 끝으로 그를 구원해주기 위해 눈을 꼭 감고 방아쇠를 당겼다. 이제 나는 누구에게도 피해가 되지 않는 무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bgm: 쿠팡트럭 후진하는 소리)<<무슨 노래인지 알 수 없다.



"내가 널 좋아한다고-!"

"에,"

"... 헙"



분명 방아쇠를 힘껏 당겼는데 총알은 커녕 약한 물줄기가 찍-하고 나왔다. 그와 동시에 금기를 말해버린 하야마는 입을 가리고 놀란 표정으로 아까와 같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흰 벽이 하나씩 사라지더니 교실의 풍경이 펼쳐졌다. 교실에는 아무도 없지 않았고 모든 학생들이 놀란 표정으로 우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하아, 하야하치 아아...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공과 그런 마음이 자신에게는 없어 공을 안 좋은 방법으로 구원해주려는 타락천사같은 수-!"

"에비나, 괜찮냐구-?!"



꿈이길 바랬다. 상황파악이 되지 않았다. 교실에서 17172892936개의 눈동자가 나와 하야마를 향했고 모두 표정이 비밀을 알아버렸다는 듯 민망한 표정이었다. 하야마는 얼굴이 불타오르는 듯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고 나는 멍하게 우두커니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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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발꿈"


꿈이었다. 하핫.